증조부의 호(?)이다. 앞의 선조와 같이 취자가 있는데, 한자로는 다른 푸를 "취' 이다.
글자 그대로는 푸른 구름..
옛 기거하시던 사랑채(?)에 있던 현판, 지금은 행랑채에 걸려있다.
증조부는 어떠셨는지..
나 태어나기 전 돌아가셔서 알 수 없으나,
얼마전 당신이 손수 기록하신 자서전(일기?)가 번역,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 읽고 있다.
묘비문, 생활/법도, 편지, 제문, 기행기 등등..
전국 곳곳을 다니셨고, 여행기를 남기셨다.
그중 지금은 자세히 볼 수 없는 금강산, 이북지방 등등의 여행기를 여기에 올려보려 한다.
취운의 유래에 대하여...
일기의 서문이기도 한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한학하시는 분이 번역한 것이라 전체 문장이나 시 부분이 매끄럽지는(혹은 현대적이지) 못하다.
翠雲自敍
우매한 나는 이 하늘과 땅 사이에 버려진 하나의 좀 벌래이다. 일찌기 가정교훈(家庭敎訓)을 익힐 기회를 잃어 이미 배운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과 마주 앉아 문자(文字)를 변론할때, 스스로 부끄럽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객지에서 십년 세월을 낭비하고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오니 거처할 주택이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그 터에 집을 지어 안체(內寢)를 삼고 곁에 있는 가옥(家屋)을 매입(買入)하여 방안을 넓이 개조해 손님을 영접하고 자손들이 공부하는 장소로 삼았다. 공사가 끝나자 글씨 잘쓴 명필(名筆)을 초청해 취운 두 글자를 썼으니 취운은 나의 이름이 아니고 실은 제(齊)의 이름이다. 취운의 의미가 특별한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호수(湖水)위 옛 마을이기 때문이다.
남쪽에는 월출산이 있고 북쪽에는 덕진(德津)이 있으며 대나무(竹田)와 천그루 소나무가 있어 항상 취운이 서려 있는 듯 하니 궁벽한 그 가운데 자신의 거처가 매우 편안하다.
봄에는 비 구름이 끼어 있기 때문에 그 계절에는 호수에 구름밭을 갈아 뽕나무와 삼씨를 심고, 가을 달이 떠오르는 밤에는 구름낀 밭에 나가 벼를 심는다. 이곳에 거처한 것은 나와 구름이며 나는 구름과 더불어 이미 마음 깊이 약속을 하였으니 구름이 어찌 나를 저버리며 나 또한 구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구름밖에 바람소리와 조수 소리를 실컷 들으면서 사립문을 닫고 자라처럼 목을 쭈구리고 있으니 세상을 은둔한 것이 아니며 나의 성격이 옹졸하기 때문이다. 취운이라는 운(雲)을 감히 진(晉)나라 도연명의 운무심(雲無心)이라는 운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 위야(魏野)의 한조각 구름에 비교하면 아마 부끄럼은 없을 것이다.
나의 거주지를 지나간자 나의 운산(雲山)과 운수(雲水)를 관찰하면 충분히 짐작이 될것이니 반드시 취운 두 글자로써 나의 이름위에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이어 다음과 같은 시를 읊노라.
호수와 산 푸르름 쌓여 숲을 이루었으니,
그 가운데 띠집있어 지경이 깊숙하다.
들 형세는 연기 읊어 처마 밖에 넓고
샘물소리 비를 비지느라 베겟머리에서 읊누나
손자 데리고 마을 길에서 걸음마를 익혔고
손님 맞아 잣나무 그늘에서 책을 보았어
쉬는 날 없이 오가는 것을 누구가 알손가
주인(主人)의 마음을 구름은 응당 알거야
취운(翠雲) 이원우(李元雨)